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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의 현대 건축과 선사시대 스페인의 미술
    스페인 학문과 예술 2023. 5. 19. 22:04

    20세기 초 건축은 전시대에 시작된 건축양식과 정신이 변함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프랑스 기원의 절충주의적 바로크 양식(마드리드 레띠로 공원 내 알폰소 12세 기념비), 또는 세기말 아르누보 장식을 섞은 르네상스 양식(스페인 은행 건물)이 대표적이다.

    이 당시 특징이라고  할 만한 새로움이라면 기술이나 양식에 있어서 미국 건축술의 영향이다. 1926년에 건축된 '마드리드 선신국'이 그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미국의 영향은 데코예술의 기하학적이며 깨끗하고 가는 선으로 된 장식과 함께 널리 퍼져나갔다.

    1939년부터 건축은 스페인 전통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양식, 즉 전통주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마드리드의 '공군본부' 건물은 엄숙한 라인의 에레라의 건축술로 지어진 것이고 발렌시아의 '사자들의 십자가'는 프랑스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독일의 나치를 모방한 팔랑히스트 예술품으로 마드리드의 '개선문', 그리고 여기에 전통을 가미한 '죽음의 계곡'에 있는 무구류사(1893~1952)의 대본당이 있다. 혁신적으로 콘크리트를 건축에 사용한 에두아르도 또로하도(1899~1961)도 그 당시 인물이다.

    1950년대에 들어서 건축은 국제적인 추세로 기능 면을 강조한 공간들이 많아졌다. 마드리드의 '정부 신청사' 건물과 '마드리드 대학' 건물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아메리카 양식은 공공건물뿐만 아니라 개인 건축물에도 적용되었다. 장식에 있어서는 모더니즘과 신고전주의 미학을 가미했지만 갈수록 더욱더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현대식 건축물들이 등장하여 스페인의 현 도시들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 당시의 대표적인 스페인 건축가는 호세 루이스 세르트(1902~1983)로 그는 하버드 대학 미술대학 학장(1953~1969)으로 있으면서 보스턴과 케임브리지에 많은 건물을 세웠다. 이 당시 교회 건물들은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또는 북유럽풍으로 지어졌다.

    1970년대에 들어서 후기 모더니즘 경향의 절충주의 건축양식이나 신모더니즘 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나 미국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 건축물로 라파엘 모네오 작품인 마드리드의 아또차 역과 보필의 시카고 도날리 빌딩(1992), 안달루시아 건축대학 사무소 본부 건물과 세비야의 버스역 그리고 산따 후스타 기차역이 있다. 또 가장 최근에 스페인 빌바오에 세워진 현대식 건축물이 하나 있다.

    빌바오는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를 탄생시킨 장소로부터 40분 거리에 있는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서 상당히 부유한 바스크 자치지역의 수도이다. 빌바오 주 정부는 문화적인 발전이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많은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이다. 빌바오 도심 사이를 흐르고 있는 네르비온 강변의 컨테이너 야적장과 조선소가 모여 있는 공업지역에 위치한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미술관, 그리고 이 미술관의 메인홀을 기점으로 각 실들이 연계되는 공간 배치, 빌바오 시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독립타워의 도입 등은 마치 만개한 꽃을 형상한 조각품 같다. 구겐하임 미술관 전면 입구에는 개관 기념으로 제프 쿤스가 설치한 조각 '퍼피'가 4미터 높이로 상징적으로 서 있고 이 조각을 지나 메인홀에 들어서면 높이 50미터의 아트리움 공간이 펼쳐진다. 이 메인홀은 흰색의 기둥이 활처럼 휘어져 뻗어 있고 정면 유리는 외부의 빛을 전면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정면 유리에는 날개처럼 뻗은, 각 실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 걸쳐 있고 엘리베이터가 유리막을 통해 오르내리고 있으며 철골구조와 유리 곡면 등으로 투명과 불투명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전시 공간은 상설 전시공간, 초대작가 전시공간, 기획 전시공간의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선사시대 스페인의 미술

    스페인 미술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이기도 한 알타미라 동굴의 바위에 그린 그림이다. 알타미라는 스페인 북부 산탄데르 지방에 있는 장소 이름이며, 들소와 투우, 사슴과 말, 산양 등의 동물들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그려 놓은 이 그림은 선사시대의 인간들이 약 기원전 15,000년경에 남겨 놓은 중요한 흔적이다. 이 칸타브리아파 벽화 그림은 동굴벽화의 극치로 1879년에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가 발견했다. 역시 칸타브리아 구석기 오르노스 데 라 뻬냐 동굴벽화는 인간들이 춤을 추고 있는 그림으로 제사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미술적인 느낌을 주고 있고 동굴 내부도 풍요를 비는 성전처럼 되어 있다. 그들은 무엇을 보전하고 남기자는 본능의 발로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눈에 보기 좋은 무엇인가를 보고 그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생존을 위해 종교적 의식에서 그렸기 때문에 미학적, 사회적 목적이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나타난 선사시대 예술은 8,000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그들이 동굴에 그린 벽화는 어떤 질서나 구성이 없이 자연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은 암석에 음과 양으로 조각한 다음 광물 또는 동물에서 채취한 염료를 칠했으며 색채는 주로 빨강, 노랑, 황갈색, 검정 등으로 오늘날까지 그들의 종교적, 마술적 힘이 느껴진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 동부 지역의 회화는 별로 깊지 않은 동굴 바위벽에 단색의 동물 형상이나 인간의 모습이 추상적이며 도해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수렵, 전투, 종교의식 및 무용 등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헤로나에서 말라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산재해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레리다와 테루엘, 알바세떼 지역 동굴벽화가 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유렵 내륙 거주민들의 것과 유사한 반면 반도 동부지역의 것은 아프리카 북쪽 거주민의 예술과 매우 유사하다. 그 후 농경문화가 들어서면서 사실주의 경향에서 멀어지는 도해적인 장식 그림이 나타난다.

    이렇게 그림은 벽화로 계속되다가 제단을 장식하기 위한 나무에 그린 그림이 나오고 성경, 종교회의의 사본에 그려진 세밀화와 성자들의 이미지를 그린 이콘이 등장한다. 이 세밀화는 서고트족의 미술에 기원을 두고 아랍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상징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보이며 부정확하지만 원근법이 적용된 듯하고 이상화된 정경 위해 생생한 색깔이 띠를 두르고 있다.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는 10세기 것으로 뉴욕의 모건 예술품 수집소, 국립 도서관 및 헤로나 성당의 소장품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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